30년만에 만난 다인오디오의 역작 컨시퀀스 UE
이 종학 (Johnny Lee)
지금부터 약 20년 전에 새로운 형태의 소형 스피커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었다. 영국제로는 어쿠스틱 에너지, 프로악 등이 돋보였고, 다인오디오 역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처음 이 스피커들을 봤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기로 말하면 당시 유행하던 로저스나 하베스의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가격은 두 세 배가 넘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우퍼의 구경이 클수록 저역 재생에 유리하지 않은가? 따라서 이 작은 녀석들이 어떤 소리를 낼지 도무지 감이 서지 않았다. 특히 저역에 관한 한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긴 당시만 해도 매킨토시, 쿼드 등의 앰프가 일반적이어서, 크렐이나 마크 레빈슨을 이 작은 스피커에 물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실제로 여러 숍에서 영국제 인티 앰프들을 걸고 모니터링을 해보면 시시한 소리가 나왔다. 대체 누가 이런 비싼 장난감을 살까 의문만 더해갔다. 당시 숍 주인조차 이런 물건을 사가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러다 90년대 중반, 처음으로 힐튼 호텔에서 오디오 쇼가 열렸다. 정말로 이때만큼 가슴 설렜던 행사는 없었으리라.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이 모두 모여 멋진 호텔 룸에 각각 전시되어 제각각 기량을 뽐내는 행사라니, 이 얼마나 황홀한가? 특히, 당시 인기 있던 브랜드의 경우,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긴 행렬도 보였다. 거의 점심을 거르고 귀동냥을 하러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다 우연히 듀크 엘링턴의 빅 밴드 음악이 나오는 곳을 들어갔다. 빅 밴드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12인조 이상이나 되고, 여러 대의 관악기들이 동원되기 때문에 재생이 쉽지 않다. 대구경의 우퍼는 필수 중 필수. 혼 타입이면 더 좋고.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음은 모든 혼 악기들의 음색이며 위치 등이 정확하게 구분될 뿐 아니라, 박력있는 드럼과 더블 베이스 음에서 대단한 저역을 만끽할 수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소리인가 둘러봤지만 눈에 띄는 스피커가 없었다. 뭐야, 어디에 감춰둔 거야,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작은 스피커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다인오디오의 소형 스피커였다. 아, 이런 것이구나. 바로 이런 것이었어. 그때야 스테레오 이미지가 뭐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뭔지 감이 왔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충격을 준 스피커들이 많지 않았으므로, 내게 다인오디오는 매우 특별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이번에 만난 다인오디오의 창립 30주년 기념작 컨시퀀스 얼티미트 에디션(Consequence Ultimate Edition)을 보니, 그 출사표가 당당하다. 바로 24bit/196KHz에 대응하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사실 본 기는 두 번째 작품으로, 그 전신은 1984년에 나온 컨시퀀스다. 약 30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컨셉으로 스피커를 만든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인데, 바로 이 출사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지널 모델 당시 디지털이라곤 CD가 전부였고, 그나마 레드북 포맷의 형태로서 16bit/44.1KHz에 불과했다. 지금의 최고 사양 디지털 파일을 생각하면 비교하기가 뭐할 정도다.
사실 오리지널 컨시퀀스는 아는 분이 한동안 애지중지 사용한 바 있다. 일단 맨 위에 우퍼가 있고, 맨 밑에 트위터가 있어서 한 눈에 봐도 잊을 수 없는 포름이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스피커를 만들다 만들다 지쳐서 이런 식으로 한번 발상의 전환을 해본 것일까?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소리만큼은 인상에 남았다. 빼어난 해상력과 빠른 리스폰스, 와이드 레인지한 음향. 현대 스피커의 정점을 찍은 제품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의외로 시장에 널리 각인되지 못해, 지금은 중고를 찾으려 해도 없다. 당시만 해도 이런 포름은 우리에게 생소했던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신작을 만났다. 외관상 그리 달라진 것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한 둘이 아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졌을까? 뭐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항목이 많아져서 원고량이 부족할 정도다. 개개 유닛의 차이라던가, 인클로저의 제작 방식, 네트웍의 설계 등 파고 들면 한이 없다. 단, 오리지널 제품이 발매 당시 스피커 역사를 10년은 앞당겼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진보적이었기에, 이런 튼튼한 배경을 가진 신제품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본 기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사운드 스테이지다. 그냥 단순히 스케일만 크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각종 음성 정보로 가득 메운다. 또 이런 거대한 무대를 메우려면, 아무래도 양질의 LP나 24/196 포맷은 필수라 하겠다. 따라서 본 기를 구입한다면, 당연히 소스쪽에 개량이 이뤄져야 할 듯하다.
둘째로 언급할 것이 바로 저역대의 신장. 무려 17Hz까지 밑으로 뻗는다. 제대로 앰프를 물리면 바닥을 구르는 저역의 압박감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그간 많은 제품들이 CD의 포맷에 맞춰 20Hz 이하는 꿈도 꾸지 못한 상황에서, 이 부분은 확실히 진일보한 부분이라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디테일. 그야말로 놀라운 해상력을 보여준다. 디지털 카메라로 치면 4천만 화소 가까이 무장한 D800이나 그 이상이라 해야 할까? 하긴 파일이나 소스가 진화한 만큼, 그 엄청난 음성 정보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이 정도 클래스의 스피커는 기본이라 하겠다. 향후 4K 방식의 HD 포맷이 정착될 경우, 요구되는 TV의 최소 크기가 80인치라고 한다. 정보량이 많아지면, 렌즈건 디스플레이건 스피커건 어느 정도 대형화는 필수인 셈이다.
사실 이전에 다인오디오를 주재하는 빌프리드 에렌홀츠(Wilfried Ehrenholz)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인터뷰 내용은 본 웹진에 소개된 바도 있어서 참고할 만도 한데, 여기서 나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다인오디오라는 브랜드 네임의 의미. 일본에서는 디나오디오라고 발음한다. 이를 봐서 덴마크 언어로 특별한 뜻을 갖고 있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그러나 에렌홀츠씨의 답변은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바로 다이내믹 오디오의 준말이라는 것이다. 아하!
그럼 다이내믹스가 다인오디오가 추구하는 음향 철학의 핵심이라는 말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를 위해 동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스퍼커의 개량을 이뤄왔다. 그 역사가 곧 현대 스피커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시청을 위해 매킨토시 C22 및 MC 275 애니버서리를 준비했다. 소스는 플레이백 디자인스 MPS-5.
우선 정명훈이 지휘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부터 들어보자. 확실히 본기의 성능이 돋보이는 것은, 안쪽으로 깊숙이 펼쳐지는 음장부터다. 멀리 팀파니가 아련히 들리다가 점차 커지면서 이쪽으로 압박해오는 모습의 정확한 묘사다. 원근의 이미지가 명확히 잡힌다. 이후 휙휙 그어대는 바이올린군의 단호함이나 사정없이 쏟아지는 관악기들의 향연, 중간에 저역을 장악하는 튜바의 존재감이 또렷이 포착된다.
조 수미의 <도나 도나>는 한없이 포근하고 또 서정적이다. 가볍게 더블 베이스를 튕기는 가운데 사뿐사뿐 걷듯 발성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미소를 뿌리게 한다. 일단 그녀의 위치가 정확하게 포착되고, 각 악기들의 배열도 손가락을 지적할 만큼 정교하다. 완벽한 스테레오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포커싱, 깊이, 넓이 등이 조각처럼 단단히 재현된다. 그 안의 풍부한 음성 정보는 얼마나 밀도감이 대단한지 실감케 한다.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의 . 처음에는 가볍게 읇조리다가 점차 고조되어 폭발하는 구성인데, 무엇보다 존 보냄의 드럼이 과하지 않고, 전자 기타의 울림이 풍부하며, 보컬의 포효하는 부분이 일체 귀를 자극하지 않는다. 분명 시끄럽고, 거친 음인데, 듣는 데에 별 부담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런 록을 들을 때 역으로 본 기의 진가가 잘 드러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험 삼아 볼륨을 더 올려도, 주변에 왕왕거리는 음이 없다. MC 275 애니버서리의 출력을 생각하면 이런 당찬 음의 압박감은 미스테리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