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톤이라는 브랜드는, 이제 단결정이라는 트레이드마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에 안착한 케이블메이커가 되었다. 신 기술에 대한 갈망이 어느 분야보다도 강한 오디오케이블 분야에 있어서 단결정기술에 대한 오디오파일들의 반응은 주목할 만 했으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제 단결정기술에 대해 새삼 반복하여 설명할 필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주 각별한 의미의 이 단결정 케이블들을, 해외의 유명 케이블 브랜드가 아닌 국산 솔리톤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역시 단결정 단심선을 사용하여 만든 솔리톤의 파워케이블 CPS12는 가격대에 준하는 기품을 보여주고 있다. 알루타이(Alutie)라고 불리는 원통형의 금속 케이스를 양쪽 단자에 덧붙여놓았는데, 제작사의 설명에 의하면 단자 부분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세진동에 대한 솔루션이라고 한다. 앰프나 CDP가 뒷벽과 바짝 붙어있는 구조라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파워케이블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직접 제품을 보게 되면 이 케이블을 사용하기 위해 기기들을 앞으로 꺼내 놓을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디자인적으로도 그렇고 음질적으로도 그렇다.
다른 솔리톤 케이블과 마찬가지로 이 파워코드 역시 약간 뻣뻣한 텐션을 가지고 있다. 18AWG의 단결정 구리 단심선을 도체로 사용하고 있으며, 암, 수 커넥터 또한 정밀 가공한 단결정 구리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제작사 측에서는 보석 가공에 준하는 수준으로 단자들을 연마했다고 한다. 접촉저항이 음질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순도 높은 구리 단결정 단자이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제품보다 산화가 덜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솔리톤 케이블들은 대부분 착색을 일으키지 않는다. CPS12 파워코드 또한 그러한 기본성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스템 전반적인 음악적 뉘앙스를 보다 분명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다. 음악의 디테일을 살려주되 과장하지 않고, 각각의 악기들이 자기 위치에서 충실하게 본연의 역할을 다 하도록 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결벽증 있는 성격 까다로운 지휘자 같은 성향은 아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등에서는 찰현의 미묘한 떨림과 뉘앙스, 그리고 현 자체의 질감 등을 잘 잡아내고 있다. 전 대역에 걸쳐 해상력은 충분히 향상되고 있으며, 음상의 정확도는 청취자로 하여금 스피커 사이 빈 공간을 다시 쳐다보게 할 정도이다. 연주공간의 온도가 약간 내려간 듯한 차분함과 냉정함이 느껴지지만, 이는 오디오적 쾌감의 측면에서는 플러스적인 요소일 것이다. 여러 개의 악기가 협연하는 녹음에서는 각 악기간의 거리감이 분명하게 느껴지며, 앞 뒤 공간의 레이어감은 명확하고 서로가 독립되어 있다. 때문에 악기연주자간의 감성적인 교류가 느껴지는 듯한 온기감은 기대하기 힘들다. 사운드가 따스하게 피어 오르는 느낌은 아니지만, 너무 경직되게 사운드를 잡아두는 정도는 아니다.
일부 파워케이블에서는 인위적으로 특정 음 대역을 강조하여 오디오적인 쾌감을 위장하고 있지만, CPS12는 전 대역에 걸쳐 평탄한 음 대역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설령 시스템 자체가 음 대역의 과장이 있더라도, 본래의 플랫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듯한 뉘앙스를 받을 정도이다. 소릿결이 차분해지고 정돈된 느낌과 생기감 넘치는 바비드한 성향은 서로 상반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답답함과 산만함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란, 어찌 보면 모순인 것이다. 하지만 CPS12 파워코드는 이 두 가지 가치의 가운데에서 아주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 보인다.
실력 있는 파워케이블은 시스템 전반에 걸쳐 에너지감을 충분히 부여하게 된다. 스피커는 예전보다 구동이 더 확실히 되는 듯 하고 무대는 넓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정돈되지 않은 산만함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케이블이나 기기들을 바꿀 생각을 하는 것이다. CPS12 파워코드는 이런 측면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제품이다. 고급 파워케이블의 미덕을 온전히 전달하면서도 추가 요구 사항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 성향은, 오디오파일들에게 매력이 될 수 있다.
CPS12는 음악적인 감성과 뉘앙스를 남발하는 제품이 아니다. 때문에 다소 냉정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파워케이블 하나만 가지고 전체 시스템을 완성할 생각이 아니라면, 오히려 전체적인 사운드를 튜닝하는데 있어서 탄탄한 주춧돌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디오 시스템에서 튜닝의 기준이 되는 레퍼런스를 앰프나 스피커 등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케이블링에 있어서는 CPS12정도의 파워코드를 기준으로 하면 비교적 쉽고 정확하게 원하는 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HFC - 한 창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