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는 저리 치워
Jamo의 박스 없는 최신형 스피커는 작다면 작은 크기에 주축 모델의 성능을 담았다.
발상은 단순하다. 주축모델인 R 909 다이폴 스피커(HFC 280에서 리뷰)를 가져다가 작게 만들어보자는 것. 그 결과 R 907이 탄생했는데, 그래도 시중의 어느 스피커보다도 큰 편이다.
“통상적인 ‘콘과 돔’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다이폴
설계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Jamo의 최신형 박스 없는 스피커는 지게차용 받침대 위에 실려서 나무 상자에 담겨 도착한다. 스피커를 박스에서 꺼내려면 어른 두 명이 필요하고, 숨 쉴 공간도 넓게 주어야 한다. 즉, R 909보다는 소형 모델일지 모르나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
R 907은 다이폴 방식으로 스피커 중에서는 소수그룹에 속한다. 거기에 통상적인 ‘콘과 돔’ 드라이버를 채택한 다이폴 스피커란 더더욱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방식도 지지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피커계의 전설 지크프리트 링크비츠(스피커 설계의 교과서를 완전히 새로 쓴 그는 링크비츠-라일리 크로스오버의 바로 그 링크비츠이다)는 다이폴 방식을 강력히 옹호했다.
간단히 말해, 다이폴 스피커는 음악을 앞뒤 양방향으로 방사하는데, 드라이버가 한 장의 배플 보드에 장착되었을 뿐 그 뒷면에 캐비닛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캐비닛 안의 공기의 압력이 드라이버의 움직임에 미치는 착색효과나 이력곡선(hysteresis loop)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이다. 물론 이 방식은 배플이 흔들림 없이 단단해야 가능하다. 이 모델에서는 프론트배플인 7겹 MDF 압축 판자의 두께는 43mm이며 고압에서 접착 및 성형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배플은 땅에 꽂아둔 크리켓 배트와 좀 닮은 모양이다. 배플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댐핑된 5x60mm 이중 지지대가 뒷면에 버티고 있고, 23kg짜리 무쇠 베이스가 지원한다. 바이와이어링 터미널은 육중한 베이스에 지지대 양편으로 장착되어 있다. 각 스피커에는 전화번호부 크기의 박스가 따라오는데, 그 안에는 온갖 스파이크며, 너트, 스패너 및 무슨 고문기구 같은 것들이 기가 질릴 정도로 가득하다. 전선이며 스피커의 내부가 드러나는 게 싫다면, 리어 그릴을 장착하여 스피커 캐비닛 같은 모양새를 연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캐비닛이 있다면 저역 강화에서 크게 유리한데, 드라이버의 전면으로 이동한 공기가 뒤쪽으로 급히 이동하여 200Hz 이하의 저역대에서 스피커를 효과적으로 ‘단락’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MartinLogan 같은 하이브리드 정전형 스피커에서는 다이폴 패널과 함께 서브우퍼 박스에 들어간 저역 드라이버로 구성된다.
Jamo는 박스가 없어도 크로스오버를 통해 상당히 저역이 강화되어 ‘단락’ 현상을 극복하여, 200Hz에서 100dB 피크에서 6dB/옥타브로 부드럽게 롤오프된다. 그리하여 R 907은 30Hz까지 내려가는 강력한 저역을 제공하며, 2x380mm 드라이버는 무거운 재질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경량급인 공기 건조된 종이와 벤티드 폴 피스와 배스킷, 50mm 보이스 코일로 만들어졌고, 30Hz 공진 주파수와 빠르고 팽팽한 저역 응답을 제공한다.
중역은 SEAS와 공동으로 개발한 150mm 마그네슘 드라이버가 담당하는데, 평범한 페라이트 링 대신 복합 폴과 백 플레이트를 채택했다. 여기에 벤틸레이티드 보이스 코일을 솔리드 매트 크롬 위상 플러그가 보조하고 있다. R 909의 중역 드라이버와 비슷하지만, 보이스 코일 주변에 스톤헨지처럼 둘러선 마그넷 배치는 없다.
ScanSpeak의 전설적인 Revelator 트위터를 채택한 R 909와 달리 R 907은 DTT 28mm 멀티 코팅 패브릭 돔 트위터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택했다. 스피커의 다른 드라이버들과 달리 트위터는 이중 댐핑된 체임버 안에 밀폐되어 있어 엄밀히 말하면 다이폴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3웨이, 4 드라이버 구성이긴 하지만 크로스오버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250Hz와 2.5Hz이며, 전반적으로 12dB/옥타브(세컨드 오더) 슬로프를 보인다. 다만 크로스오버에 사용된 부품의 품질은 훌륭한데, Clarity Cap 포일 커패시터와 에어 코일 인덕터 등이다. 물론 나머지 제품의 고급스러움을 생각하면 당연하긴 하다.
사운드 퀄리티
Jamo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R 907(과 R 909)를 만들었다. 바로 다이내믹 라우드스피커의 장점은 살리되 박스로 인한 한계는 없애자는 것으로, 대체로 그 목표를 이루었다. R 909와 일대일로 비교해보면 아주 조금 작은 R 907은 트위터가 듣는 이의 귀에 좀더 가깝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 보통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청취한다면 최적의 사운드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이 스피커는 똑바로 앉아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마땅한 제품이다.
제일 먼저 듣는 이를 강타하는 것은 바로 저역이다. 말 그대로 저역 음들이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육박하는데, 깊고 강력하며 대단하다. 이상한 일은 저역 드라이버가 그 과정에서 별로 공기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최저역을 내뿜는 서브우퍼의 저역 드라이버 위에 손을 얹어보면 비트 하나하나가 강풍을 몰고 온다. R 907의 경우 공기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다이폴 설계 덕분으로, 사운드 면에서 빠르고 깊고 적절히 제어된 저역을 선사한다.
그 다음에는 저역과 중역 사운드가 이제까지 들어온 것과 너무나 다름을 깨닫게 된다. 극히 빠르고, 음악을 너무나 실감나게 들려준다. Evan Dando와 Juliana Hatfield의 <My Drug Buddy>(캘리포니아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라이브 어쿠스틱 곡)를 들으면, 바로 스튜디오에 가수들과 함께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생생하다. Seasick Steve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스피커의 사운드는 Steve의 Roland Cube 30 앰프와 똑같은 무게감과 음색을 제공하며, 볼륨마저 거의 같다. 이 스피커는 그냥 음반이 아니라, 아티스트가 듣는 이의 거실에서 음반 녹음을 하는 것 같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무엇에 연결하고 어떤 음악을 듣든 스피커의 개성이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Jamo의 기량은 절정에 달한다. 정전식 패널 스피커처럼 스피커 캐비닛으로 인한 타이밍 지연이 없어 사운드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실감이 대단하다. 게다가 통상적인 콘과 돔 스피커 드라이버의 헤드룸과 넉넉함을 갖고 있어, 사운드가 정전식보다 훨씬 널찍하고 크며 다이내믹하다. 다른 말로, 이것은 AC/DC의 하드록이나 말러의 8번 교향곡을 신나게 듣고 싶은 사람을 위한 패널형 스피커이다.
캐비닛을 없애는 데 따르는 문제는 스피커 드라이버가 완전히 노출된다는 것. 박스의 착색현상은 때로는 흥분한 드라이버를 차분하게 해주는 순기능까지 해준다. R 907의 경우, 고역이 귀에 거슬리는 수가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적(더 정확하게는 레코딩) 스타일을 골고루 뒷받침해주기에는 역부족이며, 고역이 강조된 곡(초기 Led Zeppelin 앨범이라든가)은 짜릿함을 넘어서 곧 귀를 찢는 날카로움으로 변질된다. R 907을 아무 앰프에나 연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도 무리로 판명된다. 이 높은 중역을 제대로 다룰 수 있으려면 2-300W 정도 출력의 잘 설계된 앰프가 필요하다.
이 스피커의 개성은 무엇을 연결하든 어떤 음악을 재생하든 결국 비집고 나와 눈에 띄게 된다. 이는 박스 착색효과를 피할 수 없는 통상적인 스피커에서는 괜찮다고 생각되지만, 패널 스피커의 경우에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스피커를 무시했다가는 록커를 위한 Quad Electrostatic 같은 제품을 놓치는 셈이므로 안타까울 뿐이다.
다이폴 스피커를 정전형과 동일시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렇게 보면 Jamo R 907은 좋은 의미에서 그리고 아쉬운 의미에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좋은 부분은 팀스피리트 훈련 수준의 저역을 뿜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만, 아쉬운 점으로는 박스를 없앴다 해서 착색을 없앨 수는 없고 드라이버의 성질도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델은 정전형 패널의 칼 같은 정확성과 대형 박스 스피커의 흥겨움 사이에서 ‘중간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이 ‘타협’으로 들린다면 Jamo R 907과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혹시 양자의 장점을 취했으니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면 이보다 나은 선택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HFC
Alan Sircom